📓일기 - 파마💣

커피향이 강하게 퍼지는 순간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아쉽게도 첫사랑은 아니다. 재수학원 선생님이다. 수능을 위해 친구도 만들지 않겠다는 이상한 사명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였다. 수업이 막 시작하는데 텀블러에 담아 둔 커피를 엎었다. 고작 알루미늄 통 주제에 어찌나 소리가 큰 지 교실 안에 있는 50명의 눈, 도합 100개의 눈알이 일제히 나에게 꽂혔다. ...

내 심장의 색깔은 BLACK

옷장을 연다. 검정 티, 검정 니트, 검정 스키니, 검정 슬랙스, 검정 치마, 검정 속옷까지. 신발장을 연다. 검정 플랫슈즈, 검정 워커, 검정 운동화. 내가 가진 옷들을 색깔에 따라 적으면 블랙 리스트가 완성된다. 다른 색이 있나 뒤져본다. 진회색, 연회색, 흰색. 무채색이라는 면에서 본질적으로 같다. 얘네 합해도 블랙 리스트다. 그것들이 나를 물들인다면...

자기계발서의 새로운(?) 트렌드에 대하여

책을 잘 읽지 않는 언니의 책상에 책이 쌓이고 있다. 첫 시작은 <미움받을 용기>. 그 뒤를 이어 <자존감 수업>,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나는 뻔뻔하게 살기로 했다> 같은 책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우리 언니의 책장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닐테다. 언니가 사 모은 책들은 베스트셀러 책들이니까. 서점에는 ...

정희진의 낯선 사이

며칠 전 선물 받은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 X 민주주의>라는 책을 읽었다. 한겨레21에서 주최한 동명의 기획강연 내용을 옮긴 책이었다. 마지막 장은 이 칼럼을 쓴 정희진 선생님의 글이었고, 그 마지막의 마지막은 ‘낙태죄’ 관련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그 답변에서 나는 흥분과 분노를 읽었다. (실제 정희진 선생님의 어투가 어땠는지는 모른다. 다만...

록산 게이

우리는 자주 총알이 몇 발 있으면 누구를 쏠까?하는 고민을 킬킬 거리며 말하고는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총도, 총알도 없으며 사실 가장 쏘고 싶은 것은 나 자신일 지도 모른다. 남자를 쏘는 것은 한정된 총알의 개수을 헤아리며 고민해야 하는 일이지만, 나 자신을 쏘는 것은 모든 것을 종결시키는 방법이므로... 여성들의 위악적인 언사는 위협이 되지 못한다. ...